요즘 홈플러스 매장에 가보면 진열대에 상품이 다시 채워지고 사람들이 평소처럼 장을 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뉴스에서도 "납품이 재개됐다", "라면이 다시 들어가기 시작했다" 등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많은 분들이 "아, 이제 괜찮아지는구나"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금융과 경제 쪽을 조금 들여다본 결과, 겉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 상황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매일 새로운 문제가 불거지고 있으며, 이 사태의 파급효과는 생각보다 훨씬 넓고 깊어 보입니다.
홈플러스 사태의 본질: 신용등급 하락과 기습적인 회생 절차
다들 아시다시피 홈플러스는 현재 기업회생 절차를 진행 중입니다. 기업회생이라는 말은 좀 부드럽게 표현한 것이고, 실제로는 법정관리 상태라고 볼 수 있어요. 보통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먼저 거치는 경우가 많은데, 홈플러스는 바로 법원에 회생 신청을 했고, 놀랍게도 신청 11시간 만에 개시 결정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홈플러스와 대주주인 MBK 파트너스는 "최근 신용등급 하향 조정에 따른 자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예방적 차원에서 회생 절차를 신청하게 됐다"고 주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홈플러스는 지난달 25일 오후 4시경 신용평가사로부터 신용등급이 하락할 것이라는 예비 평정 결과를 전달받았습니다. 그런데 같은 날 홈플러스는 카드 대금 채권을 기초로 한 820억 원 규모의 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를 발행했습니다. 현재 이 사채는 신용등급이 추락하면서 사실상 휴지조각이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홈플러스는 "사채 발행 승인은 그 전날에 완료됐다"며 고의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많은 의심을 사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홈플러스는 채권단과의 사전 협의나 자구 노력 없이 기습적으로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습니다. 법원은 "재무구조 개선이 없으면 5월쯤 자금 부족 사태가 올 수 있다"며 11시간 만에 회생절차 개시를 승인했습니다. 이로 인해 약 2조 원에 달하는 금융 채권의 상환이 유예되었습니다.
개인 투자자들의 손실과 카드사들의 제한 조치
홈플러스 사태의 또 다른 심각한 측면은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입니다. 최근 금융감독원 앞에는 홈플러스 관련 유동화 상품에 투자한 사람들이 모여 항의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들은 "홈플러스가 신용카드로 물품을 구입하면 카드 회사가 갖게 되는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단기 채권"에 투자했는데, 이제 투자금을 모두 잃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 유동화 증권은 A3에 그쳤던 홈플러스의 신용등급 때문에 연 6%대의 고금리를 보장했고, 최소 투자금액이 1억 원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수억 원씩 투자한 이들은 "위험한 줄 몰랐다", "증권사가 안전하다고 주장했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한 투자자가 공개한 증권사 직원의 문자 메시지에는 "홈플러스가 3개월 안에 망하냐", "홈플러스 안전하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3,500억 원 규모의 증권이 금융 채권으로 분류되어 회생 절차에서 상거래 채권보다 변제 순위가 밀린다는 점입니다. 투자자들은 "홈플러스가 물품을 구입하는데 자금을 댄 것이므로 유동화 증권이 상거래 채권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법원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입니다.
한편, 카드사들은 피해 확산을 우려해 홈플러스 상품권 결제를 차단하기 시작했습니다. 신한, 현대, 삼성, KB국민카드가 홈플러스 상품권 구매와 충전에 대한 결제 승인을 중단했습니다. 신한카드는 "홈플러스 점에서는 사용할 수 있지만 제휴사에서 사용이 제한되는 곳이 늘어남에 따라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선제적으로 조치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미 CGV, 호텔신라, HDC아이파크몰 등이 홈플러스 상품권 결제를 중단한 상태입니다.
금융 채권 부도와 증권사들의 갈등
홈플러스의 금융 채권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금융사 부채와 리스부채를 제외하면, 카드 대금 채권을 기초로 발행한 유동화 증권, 기업어음, 전자단기사채 등이 모두 6천억 원 규모에 달합니다.
특히 홈플러스 카드 대금 기초 유동화 증권은 모두 419억 원인데, 이 중 지난 5일 만기가 다한 물량 378억 원치 전량이 부도 처리되었고, 나머지 281억 원 물량도 부도 처리될 예정입니다. 이 중 무려 3천억 원이 소매 판매되었다고 하니,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영증권 등 금융기관들은 홈플러스를 상대로 형사고발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홈플러스가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을 알리지 않은 채 금융상품을 발행했다고 주장하며, 이는 사기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편 홈플러스는 유동화 증권 상황은 향후 절차에 따라 처리하겠지만, 판매 책임은 상품을 만들고 판 신영증권 등에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홈플러스와 금융기관 사이의 책임 공방이 계속되고 있어, 앞으로 법적 분쟁이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납품업체들의 불안과 매장 운영의 위기
홈플러스 사태에서 또 하나 심각한 문제는 수많은 납품업체들이 큰 불안에 떨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 6일 협력사들이 줄줄이 이탈하면서 영업 중단 고비까지 맞았지만, 홈플러스가 대금을 순차적으로 지급하기 시작하면서 일단 사태를 수습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납품업체들이 불안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홈플러스의 납품대금 정산 주기가 다른 대형마트보다 상대적으로 길기 때문입니다. 홈플러스는 45일에서 60일의 정산 주기를 갖고 있어, 물품을 납품했다가 대금을 받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업체들이 많습니다.
특히 작년 위메프 사태를 경험한 업체들은 담보 없이 납품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이에 많은 업체들이 정산 주기를 대폭 앞당기거나 선입금을 요구하고 있지만, 홈플러스의 재정 상황상 이를 수용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서울회생법원이 최근 석 달치 물품과 약정대금 357억 원에 대한 조기 변제를 허가하면서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완전한 정상화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CJ제일제당, 오뚜기, 삼양식품, 농심 등 일부 협력사들이 납품을 재개했지만, 여전히 많은 업체들이 납품을 중단한 상태입니다.
실제 매장을 방문해보면, 일부 진열대가 텅 비어 있거나 며칠 동안 물건이 들어오지 않아 '매진'이라고 써놓은 경우도 있습니다. 소비자들도 걱정이 커져 "그동안 모아놓은 홈플러스 상품권을 빨리 써야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MBK 파트너스의 경영 방식에 대한 비판
홈플러스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로 MBK 파트너스의 경영 방식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2015년 MBK 파트너스는 약 5조 원을 대출받아 홈플러스를 7조 2천억 원에 인수했는데, 무리한 고가 인수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MBK는 부동산을 매각해 차입금을 갚고 영업이익을 이자 상환에 투입해 왔는데, 이제 그 한계에 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안산점, 부산 가야점 같이 장사가 잘되는 매장들을 매각하면서 영업 경쟁력이 더욱 약화되었고, 급성장한 이커머스 업계와의 경쟁에서도 밀리면서 3년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하는 등 자금난을 겪어 왔습니다.
채권단과의 사전 협의나 자구 노력 없이 기습적으로 기업 회생 절차를 신청한 MBK의 행태에 대한 불신도 커지고 있습니다. "다음 단계를 생각하지 않고 단기간에 이자를 절약하기 위해서 적법하긴 하지만 너무나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홈플러스 매장을 담보로 가장 많은 1조 2천억 원을 빌려준 메리츠금융그룹 관계자는 "MBK가 성의 있는 자세로 회생 방안을 만들어 채권단을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MBK가 영화 엔지니어링과 네파를 인수한 뒤 경영에 실패하거나 장기간 투자금이 묶인 사례들도 조명되면서, 사모펀드의 기업 인수에 대한 점검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국회 정무위원회가 홈플러스 사태에 대한 긴급 현안 질의를 열고 김병주 MBK 회장 등 다섯 명을 증인으로 부르기로 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입니다.
국민연금의 투자와 사회적 파급효과
홈플러스 사태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부분은 국민연금의 투자입니다. 국민연금은 상환전환우선주 등의 형태로 621억 원을 투자했고, 지금까지 331억 원을 회수했다고 합니다. 국민연금은 "회생절차 진행 상황을 면밀히 살펴 투자금 회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지만, 국민의 노후 자금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홈플러스는 4조 7천억 원 가량의 부동산 자산이 있어 금융 채권을 갚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동산 가치는 홈플러스가 정상적으로 운영된다는 전제 하에 평가된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메리츠가 담보권을 실행해서 홈플러스 매장을 매각하려고 한다면, 그 가치는 크게 하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외곽에 위치한 대형 매장들은 다른 용도로 전환하기도 쉽지 않아, 부동산 시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약 2만 명에 달하는 홈플러스 직원들의 고용 불안으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홈플러스와 거래하는 수많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어, 이 문제가 단순히 한 기업의 위기를 넘어 사회적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이 큽니다.
결론
홈플러스 사태는 우리 금융 시스템의 여러 허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첫째, 개인 투자자들에게 고위험 금융상품을 판매하면서 그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신용 위험이 큰 상품들은 전문 투자자 영역이거나 상품이 재가공된 케이스로 볼 수 있고, 복잡한 법률적인 판단을 받아야 하는 이슈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둘째, 사모펀드의 무리한 기업 인수와 단기적 이익 추구가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해치는 문제입니다. MBK 파트너스는 과도한 차입금으로 홈플러스를 인수한 뒤, 부동산 매각과 배당금 등을 통해 자금을 회수하는 데 집중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셋째, 기업회생제도가 채권자와의 협의 없이 기습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홈플러스는 채권단과의 협의 없이 바로 법원에 회생을 신청했고, 이는 채권자들의 불신을 키우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우리 경제 시스템의 개선 필요성을 일깨워줍니다. 금융상품의 판매 과정에서 투명성과 책임성이 강화되어야 하고, 사모펀드의 기업 인수와 경영에 대한 감독도 강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기업회생제도가 채무자와 채권자 간의 공정한 조정 메커니즘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보완되어야 합니다.
홈플러스 사태는 아직 진행 중이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불확실합니다. 하지만 이 사태를 통해 우리는 기업의 지속 가능한 경영, 금융 시스템의 투명성, 그리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간의 균형 있는 보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사태로 인해 피해를 입는 납품업체, 직원들, 그리고 투자자들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는 것일 것입니다.